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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일본의 교육제도가 부러워졌다. - 가토 요코,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서해문집)을 읽고.

Posted in darkforce_says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28th, 2018

10여 년 전에는 여러 학문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하는 <통섭>을 역설하고, 요즘에는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력>이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시는 대한민국 교육 정책 담당자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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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특강] 8강

Posted in hartmann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29th, 2012

현대철학의 시작이자 헤겔 철학에 대한 대대적 반격, 시간성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즉 이법적 존재와 실질적 존재에 있어 실질적 존재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현대철학은 개체적, 구체적, 감각적, 시간타는 것을 더 중요시 한다. 그래서 실존철학 나오고, 마르크스 유물론 나오고, 프로이트, 다윈까지 나온다. 헤겔 세계상에 비추어보면 이는 세상 망조드는 것이다. 세계는 딱 질서지워져 있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전개된다. 이것이 현대철학의 지형 변화이다.

선천적 인식의 길과 후천적 인식의 길, 두 길이 합치하는 곳에 우리가 믿을만한 참된 지식이 있다. 과학적 지식이 그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그 영역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믿을만한 영역이 확장된다. 절대적 지식을 알 수는 없다. 접근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 지식은 반증되면 철저히 폐기해야 한다. 그 점에서는 하르트만이 포퍼와 동일한 입장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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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특강] 5강

Posted in hartmann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2nd, 2012

칸트식으로 접근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잡다한 감각자료를 분류할 범주는 우리의 인식 안에 있다. 그런데 하르트만이 언급하는 범주의 경우 칸트의 입장과 다르다. 칸트에서처럼 우리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범주가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에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시간에도 얘기했지만 존재하는 세계는 그 자체의 원리에 따라 존재한다. 우리의 인식도 인식 자체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때 양자가 합치하는 곳이 있다. 거기에서 보편타당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즉 감각지각이 상대적이더라도 우리는 인식과 세계의 접점을 통하여 보편타당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하르트만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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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화된정신] 5주차 - 49~50절

Posted in hartmann by KeeChul Shin on the March 3rd, 2010

정신은 어떻게 물질 속에 들어가 있는가? 알고 보면 세계 자체가, 특히 인간이 수수께끼이다. 나는 기독교의 원죄가 수수께끼라고 이해한다. 그 죄는 도덕적 죄가 아니라 존재론적 죄이다. 육신과 영혼이 한 곳에 붙어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게 원죄다. 그 모순적 관계에서 온갖 갈등과 비극이 싹튼다. 모든 불행의 근원은 그 두 존재층, 서로 같이 있을 수 없는 전혀 다른 즉 이질적 존재층이 결합해서 하나의 존재자 속에 있다는 것에 있다. 정신이 물질에 담겨 있는 것이 수수께끼요 불행이긴 하지만, 정신은 그것에 의거해서만 자기 활동하고 자기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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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마지막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5th, 2009

목표를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문화권의 향방이 바뀐다. 목표가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목적이 없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이 있음을 부정하는 정신적 사유는 있을 수 없다.

여러 학자들을 살펴보았다. 다 불완전하다. 다 편파적이다. 이런 입장들을 보며 정답 없는 문제지만 고민해보자는 것이 이 강좌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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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5주차 -下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5th, 2009

인간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신체를 무시할 수 없다. 신체를 활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신을 무시할 수 없다. 정신은 신체에 의존하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정신의 독자성도, 신체에의 의존성도 인정해야 한다. 학기 처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같은 이야기에 도달하였지만 우리는 먼 길을 돌아 보았다. 앞으로는 단순히 칸트가 옳으니 그르니 이야기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범주 착오의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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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1주차 -下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5th, 2009

소설에는 1인칭 소설도 있고 3인칭 소설도 있다. 1인칭으로 서술하는 과학은 없다. 과학 이론은 그 이론을 만든, 그 이론을 접하는 사람의 마음, 태도와는 무관하다. 과학 이론의 내용은 주관을 배제한다. 이를 과학의 객관적 타당성이라고 한다. 철학에는 1인칭도 있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그들이다. 헤겔이 진리는 전체라고 주장하였을 때, 진리는 주체인 내가 받아들여야 진리라면서 헤겔을 비판한 사람이 있었다. 키에르케고르이다. 이러한 철학자들이 1인칭적 접근에 해당한다. 객관적 타당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방법에 입각하여 3인칭적 접근을 추구하는 심리철학에 비하면 매우 다른 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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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1주차 -上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4th, 2009

심적인 것은 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슬프다고 하여 가슴을 칼로 그어봐라, 피만 나온다.

내가 희망하는 것, 욕구하는 것 등은 모두 무엇인가를 지향한다. 그런데 감각적인 것, 일테면 내가 아프다는 것은 아무 것도 지향하지 않는다. 즉 심적인 것에는 지향적인 것도 있고 지향적이지 않은 것도 있다. 현대 심리철학은 감각적이거나 질적인 상태와 지향적 상태를 포괄하는 공통 속성을 규명하지 못한다. 독일철학 전통에서는 지향적 태도를 갖는 심적인 것을 ‘정신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독자적인 영역으로 분류한다. 이에 정신의 활동을 다루는 학문을 인문학, 정신과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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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0주차 -下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4th, 2009

고통이라는 속성이, 믿음이라는 속성이 아무개의 어떤 시점의 마음의 상태에서 예화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어떤 시점에서 예화된다. 막스 셸러의 ‘정신의 생명화’와 같은 논의가 막연한 데에 비해 예화에 관한 논의는 명확하다. 과학적 탐구의 방법에 가깝다. 이렇게 복합적 속성이 구체화되는 것을 김재권을 예화라고 불렀다. 그때그때 구체화되는 장소, 현장이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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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40주차 - 23.28~24.14

Posted in hegel by KeeChul Shin on the December 11th, 2008

헤겔에 따르면 ‘내용과 형식의 완전한 합치’라는 Ideal이념상을 추구Erstreben하는 것이 상징적 예술이고, 이념상을 성취Erreichen한 것이 고전적 예술이며, 초월Ueberschreiten한 것이 낭만적 예술이다. 따라서 낭만적 예술 형식은 예술의 종말이다. 낭만적 예술 형식 다음의 것은 예술이 아니라 다음 단계인 종교이다. 예술의 궁극목적이 예술 아닌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변증법적 전개 과정이다. 변증법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맹아를 완전히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가진다. 실현 후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벗어나 질적으로 전혀 다른 영역으로 넘어간다. 자기 안의 맹아를 완전히 실현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넘어가는 바 이를 ‘자기내초출自己內超出’이라고 한다.

A와 -A는 동일한 사태Sache의 두 측면이다. 양자를 자신의 계기로 가지는 전체에서 보면, A와 -A는 서로 대립,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 입각하여 정치철학 맥락에서 보면 변증법은 모순, 대립하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가자는 지극히 보수적인 태도가 된다. 이와 달리 [[정신현상학]]의 도정을 생각해보라. 감각적 확실성에서 출발하여 절대적 지까지 간다. 더 나은 것,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과정이다.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완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더 나은 뭔가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는 싹이 이 안에 있다는 논의가 가능하다. 이때 변증법은 혁명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 변증법에서는 이 두가지가 모두 이야기될 수 있다. 어떤 측면을 변증법의 진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것이냐에 따라 썩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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