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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2주차 -上 (전두표 필사)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November 28th, 2008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물론 뇌수의 활동을 토대로 하지만, 즉 뇌수의 활동에 의존해 있지만, 심리적인 작용이 곧 뇌수와 동일시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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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3주차 -上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November 24th, 2008

결과의 원인을 찾는 것이 과학적 사유이다. 계속 캐들어가면 막히는 부분에 도달한다. 이때 과학은 더 이상 탐구하지 못하지만 철학자들은 ‘무언가가 있다’고 상정한다. 지적 직관에 의해서. 캐물은 결과, 최초의 원인은 자기가 자기를 결정하는 놈임이 밝혀진다. 이 놈이 어디서 나왔나? 몰라. 무엇의 결과? 몰라. 자꾸 따지면 이율배반에 빠진다. 이를 칸트는 자유의 영역이라 불렀다. 이 영역 전까지는 자연의 영역이다. 자유는 비결정의 세계이다. 알고 보면 자기가 결정한 세계이다. 서양 말에서 자유Freiheit는 비결정을 뜻한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스스로에게서 유래한다自由’가 자유의 온전한 뜻이다. 칸트는 인간의 삶을 두 세계로 나누었다. 한 쪽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자연 법칙에 귀속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자유롭다. 인간은 두 세계에 모두 걸치고 산다. 그래서 괴롭다. 칸트 철학이 문제 해결은 못해주지만 인간이 왜 괴로운지는 밝혀주니 그나마 덜 괴로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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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0주차 -上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November 12th, 2008

막스 셸러에 따르면 practical intelligence는 동물도 인간도 가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그런데 식물에서 동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행태 다시 말해 생Leben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 인간에게 있거니와 그것을 정신Geist이라고 한다. Leben과 Geist는 서로 통약되지 않는 영역이요 인간 만이 두 영역을 끌어 안고 있다. 셸러는 나아가 정신이 생화Verlebendigung des Geistes하고, 생이 정신화Vergeistigung des Lebeng하면 신이 된다Gottwerdung고 까지 주장하였다. 말년에 카톨릭에서 파문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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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8주차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November 6th, 2008

인간은 자연적 존재로서 동물과 달리 특정 자극에 대하여 기계적으로 법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 2의 자연이 필요하다. 그것이 인간 스스로 개척하는 문화라는 세계이다. 이 문화라는 세계에는 인간 스스로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이에 인간에게는 사회성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진다. 사회화를 통하여 인간은 개체가 아닌 종적 존재로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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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9주차 -下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October 30th, 2008

막스 셸러에 따르면 정신은 환경을 대상화할 수 있는 자유로서 생명과 구별되거니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원리이다. 정신은 이성만이 아니라 의지, 정서 작용도 포함하는 직관을 포함한다. 대상화는 환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으로서 세계 사물의 완전한 사실, 현실 내용을 지각하고 그 속의 본질과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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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9주차 -上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October 30th, 2008

우리의 문제는 인간의 삶이 외적인 측면과 내적인 측면으로, 즉 신체적 물질적 영역과 정신적 심성적 영역으로 구분되면서도 통합되어있다는 것이다. 구분된다는 것은 각각이 독자적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통합된다는 것은 우리가 직접 체험하고 있는 삶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설명이 안 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실제 현실은 두 영역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두 영역을 각각 독자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로서의 내 삶은 수수께끼가 된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탐구할 때, 우리가 두 영역이 어떻게 엮이는지 모른다고 단정한다면, 우리는 삶의 이해를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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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7주차 -下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October 17th, 2008

인간은 자유롭게 살도록 진화한 존재이다. 고정된 본능에만 위탁해서는 생존이 불가하며, 스스로가 기획하고 생존해야하는 인간은 스스로가 문화라는 새로운 둥지를 개척해야 비로소 생물학적으로도 살아남는다. 이러한 내용은 로렌쯔가 1940년대에 현대생물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의 선험적 이성을 언급한 것들 중에 심리학 개념과 생물학적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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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7주차 -上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October 17th, 2008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과학적으로? 정의적으로? 정의적 실존, 육체적 실존에 따라 살고 그래서 자유롭게 사는데, 정해지지 않고 아직 있지 않아서 불안하다. 자유는 원래 불안한 것이다. 서로 고독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단절되어 있는 단독자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총체적으로 살아가려면 밥도 먹어야 하고, 의사소통도 해야 한다. 이는 나의 나 다움과 연결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인간 삶이 고달프다. 양쪽으로 가랑이 찢어지게 생겼다. 두 개의 원리가 동시에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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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6주차 -下 (보충강의)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October 17th, 2008

서양 존재론에서는 전통적으로 그것의 본질을 중요시 했었다. 콜라의 콜라다움은 그것의 현존이 아니라 본질에 있기에 학문의 탐구대상은 현존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이다. 사물의 불변하고 보편적이고 불가분적임을 연구한다. 학문적 명제가 되려면 전칭 긍정 명제로 표현되어야 한다. 현존은 가분적이고 가변적이고 개별적이다. 반면에 본질은 보편적이고 불변적이고 자기동일적, 불가분적이다. 즉 학문이란 늘 본질에 관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실존주의 철학자, 문학가들은 이것을 부정한다. 그들에게는 현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Existentialism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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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6주차 -中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October 13th, 2008

스키너는 과학주의를 표방하여, 인간의 내면적 심성성에 대해 알 수 있고 그것을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니체는 인간의 인간다움은 반지성적인 것, 의지이고, 이것은 목표도, 합리적 규칙도 없는 꿈틀거리는 것이자 생을 지향하는 것이라 보았다. 생명의 원리, 모든 존재자의 존재원리이자 인간의 근원은 생의 의지이고 힘의 의지이다. 이것이 인간의 내면적 원동력이며 따라서 반지성적이다. 이성적 사유는 종노릇하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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