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 1주차 - 下
서양의 많은 학문들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서양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철학의 여러 분야들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존재론적 논구로 들어가야 한다. 존재론은 한 마디로 ‘이 세계가 무엇이냐’는 문제를 탐구한다. 그 다음 기본 영역은 지식론 혹은 인식론이라고 불린다. ‘이 세계에 대하여 내가 무엇을 알고, 어디까지 알 수 있고, 어떻게 아느냐’를 따진다. 칸트 전후로 급부상한 영역이다. 왜 하필 칸트 시대였을까? 그 시기에 실증과학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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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신] 1주차
하르트만은 헤겔의 공을 인정하지만 헤겔의 사변적인 면, 즉 현실에 맞지 않는 공허함은 비판한다. 이는 정신들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하르트만은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 그리고 양자를 통일하는 [절대적 정신]의 구도로 이루어진 헤겔의 정신론을 체계수립의 욕구에 빠진 억지라고 비판한다. 이에 하르트만은 자신의 독특한 정신론을 제시한다. [개인적 정신]-[공동 정신(객관적 정신)]-[객체화된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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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1주차 - 上
지적 탐구 중 가장 추상적이고 원리적인 것에 대한 탐구가 존재론이다. 동양에는 없었다. 희랍인들에게는 있었다. 존재론이 토양이 되어 17, 18세기 실증과학을 꽃피웠다. 그 결과 서양이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래서 존재론이야말로 잔인한 학문이다. 단언컨대 성균관 대학에서 제공하는 강의 중 가장 재미없는 내용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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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5주차: 2.19~26
예술은 사상을 가리키는데(2.18) 직접적 감각성은 사상을 가리키지 않는다(2.19). 그렇다고 직접적 감각성을 없애면 안 된다. 헤겔은 망라하는 사람이다. 죄다 끌고 올라간다. 직접적 감각성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예술로 갈 수도 없다.
칸트를 일컬어 인식의 확실성을 정초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 칸트는 인식의 정초 근거를 궁극적으로 주관적인 [보편적] 인간에로 돌려놓았다. 이것이 [[순수이성비판]]을 통하여 칸트가 정립한 근대적 주관성의 혁명적 태도이다. 더 이상 진리여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 덕에 이후 철학자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데까르트야 말로 근대철학의 아버지로서 주관을 강조한 듯하나, certum으로서 진리의 규준을 외부에 둔 까닭에 근대 철학에 이르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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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4주차: 2.9~18
칸트 철학에는 1)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 2) 인간종으로서의 인간, 3) 공동체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라는 세 가지 종류의 인간이 나온다. 칸트 저작을 이해하려면 각각에 나타난 인간상에 맞추어 읽어야 한다. 헤겔은? 엔치클로페디 체계에 따라 읽으면 그만이다.
헤겔은 예술의 가상이 기만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의 가상은 기만이다. 철학에 이르기 전까지는 죄다 기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외적인 것보다는 덜 기만이다. ‘덜’ 기만인지 ‘더’ 기만인지는 입각점에 달려 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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