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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12주차: 3.5~12

Posted in hegel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28th, 2008

국역판은 “예술작품의 제작을 위한 규칙”과 “생산을 위한 지침”을 동격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지침”은 “규칙”보다 엄격한 의미를 갖는 까닭에 양자를 동격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제작Machen”과 “생산Produktion”도 개념적으로 구별해야 하지는 않을까? 딱 잘라 구별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제작과 생산이 같은 뜻도 아니다. 일단 헤겔이 양자를 구별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우리도 굳이 구별하지는 않기로 한다. 어떻게든 구별하려고 하는 것이 질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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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9주차 上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28th, 2008

실재는 어떻게 아는가? 현상과 실재가 합치하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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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8주차 下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28th, 2008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이것이 우리의 주제이다. 조금 더 치밀하게 분석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설명하자. 틀림없이 aporia에 부딪칠 것이다. 그래도 조금 더 치밀하게 분석적으로 문제를 파헤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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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11주차 - 예술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外

Posted in hegel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23rd, 2008

철학공부를 왜 하는가? 자신의 실존적 고민과 공부가 연관되지 않으면 지식 엘리트가 될 뿐이다. 자기 삶과 공부를 대조해야 한다. 자기 삶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하지 못하면 그 공부 다 헛방이다. 공부를 왜 하나? 공리적인 이유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헤겔은 아담스미스를 비롯하여 스코틀랜드 학파의 사상을 공부하였다. “Hyppolite는 Hegel을 Adam Smith의 제자로서 간주하고, Smith에 대한 Hegel의 몰두는, Hegel에게 경제학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 경험이 가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측면들이 어떻게 구별되고 연관되는가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Hegel의 발전에 있어서의 전환점이라고 본다.” 헤겔은 그러나 마르크스에까지 이르지 않았다. 헤겔은 고대 polis의 이상과 쉴러 등 낭만주의에 심취하였다. 인간이 ‘그렇게까지’ 망가졌다고는 보지 않은 것이다. 헤겔은 예술이 피폐한 인간을 도야시켜야 한다고 판단하였고, 이를 국가의 역할로 부여하였다. 이것이 Bildu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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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8주차 上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21st, 2008

이 세상의 참된 모습, 그야말로 실재(實在, 정말로 있는 것)는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파르메니데스)? 변화하는 것이 세상의 참 모습인가(헤라클레이토스)? 세상은 변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동일하다고 전제한다. 즉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형식논리학적으로 따지면 세상은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이에 형식논리학적 사유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제기한 철학자도 있었다. 헤겔이다. 헤겔은 [[논리학]]에서 존재의 논리, 본질의 논리, 개념의 논리를 다루었다. 헤겔에 따르면 A는 A이기도 하고 A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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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7주차 下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18th, 2008

오늘 다룰 내용은 개물을 개물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냐에 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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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7주차 上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18th, 2008

토마스 아퀴나스는 ante rei(사물에 앞서서)로서의 보편자를 인정함으로써 신학을 성립시키고, post rei(사물 뒤에)로서의 보편자를 수용하여 자연 과학을 성립시켰다. 이로써 신학과 자연 과학이 각각 자기 갈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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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10주차: 2.57~3.4

Posted in hegel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10th, 2008

“필연성을 제시하는 것(2.61)”, “이러한 증명을 수행하는 것(2.62)”, “개념에서의 성립을 구성하는 것(2.62)”은 모두 “전체의 서술(2.60)”과 같은 내용으로 무매개적으로 다루는 것과 대립된다. 전체의 서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서 서술하는 것이니 증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요 개념이 등장, 발생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체계System라고 하겠으나, 헤겔은 이들을 ‘필연성을 제시하는 것’ 다시 말해 ‘연역’과 동일시한다. 헤겔의 체계는 원환의 체계인데, 다시 말해 헤겔 철학에서는 시작과 끝이 없는데, 그 체계 안에서 연역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떻게 진보가 가능한지가 문제시된다. 이 ‘연역’이 형식논리학의 연역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니 어떤 의미의 ‘연역’인지 공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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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9주차: 2.46~56

Posted in hegel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8th, 2008

플라톤 [[국가]]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시와 노래를 가르쳐 나쁜 아이들을 purify한다. 이는 미의 영역에 속한다. 플라톤에서 미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 기능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기능론적 예술이론은 플라톤에서 규모 있게, 체계적으로 시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가 교육이 [[국가]]에서 제시된 만큼, 시가 교육은 ‘정치적 기능으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우리의 세계, 종교와 이성의 도야는 절대적인 것을 표현하는 최고의 단계로서 예술보다 한 단계 넘어서 있다.” 이성의 도야는 철학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세계”는 무엇을 뜻할까? 객관적 정신의 세계, 공동체, 국가를 뜻한다고 ‘일단’ 생각하자. 엔치클로페디 체계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입장을 밀고 가고 over-interpretation을 덧붙이면 예술이 어디에 복무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예술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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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6주차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April 7th, 2008

보편자가 있고 없고를 떠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보편자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보편자가 없다면 같은 사람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보편자를 상정해야 한다. 보편자는 우리 모두를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에 보편성이 가진 성질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대응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자는 것이 보편자 문제의 핵심이다. 보편자가 이름일 뿐인지(언어적 차원), 사유내용인지(사유내용의 차원), 실재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는지(사물의 차원)를 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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