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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신] 3주차 - 18절

Posted in hartmann by KeeChul Shin on the May 27th, 2008

헤겔은 자유를 의식하고 그 의식을 강화, 심화시키는 객관적 정신이 역사를 진전시킨다고 주장한다. 하르트만은 자유의 의식은 개인정신이 하는 것이요, 공동정신 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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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12주차 - 上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May 26th, 2008

하르트만과 하이데거는 모두 이론으로서의 형이상학, 체계로서의 형이상학을 거부하였다. 형이상학적 주장들은 논리적으로 논증되지도 않고 경험으로써 험증되지도 않는다. 특정 입장을 취하면 상대방 입장은 틀려 보이기도 한다. 이에 기존의 편파적인 형이상학적 입장들을 어떠한 입장에서 비교, 검토함으로써 세계를 똑바로 보고 인간의 삶을 기획할 것인가가 문제시 된다. 하르트만과 하이데거는 각각 비판적 존재론kritische Ontologie과 근본적 존재론fundamentale Ontologie으로써 형이상학의 편파성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양자는 세계 자체의 존재를 파악하고자 하는 동일한 이념에 입각하여 서로 다른 두 가지 길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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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신] 2주차 - 16~17절

Posted in hartmann by KeeChul Shin on the May 20th, 2008

자아의 외연은 본질적으로 획정되지 않는다. 작아질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다. 이를 수긍한다면 ‘나’라는 Person을 고정된 알갱이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자아’는 어디에 있는가? 점인가? 덩어리인가? 붙잡기 어렵다. 달이 있으면 달무리가 있듯이 자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 ‘관계’를 빼고 원자론적 자아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Person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적 삶의 영향권에 있다. 영향들의 총체가 곧 Person이다. 따라서 자아를 획정하기는 어렵지만 전체를 물들이는 흐름은 있을 것이며, 이 흐름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객관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적 정신에 관하여 논할 때 개인적 정신을 둘러싸는 객관적 정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논의는 공허할 것이다.

하르트만은 독일 관념철학의 추상성을 많이 털어내고, 경험적, 현실적 요소를 가져온다. 그렇지만 여전히 헤겔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르트만은 이 문제의식을 현대식으로 각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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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신] 10주차 - 31절

Posted in hartmann by KeeChul Shin on the May 16th, 2008

지금까지 객관적 정신이 어떻게 개인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객관적 정신은 개개인의 정신을 넘어서지만 그렇다고 개개인의 정신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르트만은 개개인의 정신에 담지 되어 있는 객관적 정신을 역사의 주체로 본다. 하르트만이 헤겔로부터 배운 부분이다. 하르트만은 헤겔이 최초로 이를 이론화하였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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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11주차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May 16th, 2008

사회적 노동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경제활동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탁월하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경제활동을 철저하게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하면서도, 정작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 인간을 고도의 정신적 존재로 보았다. 인간의 주체성을 인정하였고, 인간을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도덕적 존재로 보았다. 상이한 잣대를 적용함으로써 마르크스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헤겔은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궁극적 실재를 정신적 실체로 제시하였다. 정신은 자가 발전한다. 이것이 세계이다. 정신은 자기 자체로 있다가 밖으로 나간다. 정신의 외화는 자연의 질서로 나타난다. 정신은 다시 자신을 회복한다. 이것이 인간의 문화 활동이다. 이에 헤겔은 [정신이 외화와 자기 회복을 반복하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절대정신이 실현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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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14주차: 3.30~49

Posted in hegel by KeeChul Shin on the May 14th, 2008

‘자연Natur’이라는 개념은 여러 곳에서 쓰인다. 희랍에서는 ‘퓌시스’로서 생성의 의미를 가졌다. 퓌시스는 노모스와 대립한다. [안티고네]에서 신의 법으로서 크레온의 인간의 법, 즉 nomos에 대립하였다. 이처럼 시대를 거쳐 antagonistic binary를 형성하였다. 예술철학의 맥락에서 이 대립은 미학적 문제로 나타난다. 앞서 예술작품은 자연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이라고 하였다. 예술작품은 인공적인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공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인간은 다름 아닌 자연에 속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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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10주차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May 14th, 2008

지금까지 도대체 어떤 원리로,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가 존재하는가를 살펴보았다. 현상과 실재, 변화와 실체, 개별자와 보편자에 관한 논변을 다루었다. 이 논변들을 일컬어 형식적 존재론이라고 한다. 이제는 존재하는 것이 내용적으로 무엇이냐는 문제, 세계가 실제로 내용상 무엇이냐는 문제를 다룬다. 이를 일컬어 실질적 존재론이라고 한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하면 나를 다 갖다 바친다. 다 주어도 모자라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익과 손해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면 내가 넘쳐난다. 상대방도 나에게 넘쳐난다. 다른 사람은 상대방을 모자란 자로 보지만, 나는 그를 충만하고 넘쳐나는 자로 본다. 그래서 사랑은 좋은 것이다. 모든 종교 지도자, moralist들이 사랑하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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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 서론 강독 13주차: 3.13~29

Posted in hegel by KeeChul Shin on the May 6th, 2008

플라톤에서는 시인이 아닌 철학자의 Begeisterung이 제시된다. 희랍적 의미에서 영혼psyche은 육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죽으면 소멸되는 것으로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에 와서 psyche 개념이 바뀐다. 소크라테스는 ‘너의 영혼을 돌보라’라고 말하면서 영혼에게 실체성을 부여한다. 이를 플라톤이 내려 받음으로써 영혼 불멸 및 도덕의 절대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플라톤에서 psyche는 그것 자체로 실체적인 하나의 정신을 뜻한다. 개인의 영혼을 돌보아 세계영혼, 우주정신과 합치시키는 것이 플라톤적 의미의 철학이요 이 합치된 순간이 Begeisterung영감이다. 따라서 플라톤적 의미에서 Begeisterung은 시적인 것이 아니요, 진리가 나에게 임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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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 9주차 下

Posted in ont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May 5th, 2008

우리 경험 세계에서 뒤로 한 꺼풀만 가면 경험 세계의 원리가 도사리고 있다. 직접적으로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세계를 놓고 ‘그러그러한 경험 내용이 이러저러한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직접 경험은 아니더라도 간접 경험은 할 수 있다. 흄은 그냥 모른다고 했다. 칸트는 간접 경험으로나마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차이점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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