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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마지막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5th, 2009

목표를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문화권의 향방이 바뀐다. 목표가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목적이 없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이 있음을 부정하는 정신적 사유는 있을 수 없다.

여러 학자들을 살펴보았다. 다 불완전하다. 다 편파적이다. 이런 입장들을 보며 정답 없는 문제지만 고민해보자는 것이 이 강좌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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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5주차 -下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5th, 2009

인간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신체를 무시할 수 없다. 신체를 활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신을 무시할 수 없다. 정신은 신체에 의존하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정신의 독자성도, 신체에의 의존성도 인정해야 한다. 학기 처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같은 이야기에 도달하였지만 우리는 먼 길을 돌아 보았다. 앞으로는 단순히 칸트가 옳으니 그르니 이야기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범주 착오의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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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1주차 -下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5th, 2009

소설에는 1인칭 소설도 있고 3인칭 소설도 있다. 1인칭으로 서술하는 과학은 없다. 과학 이론은 그 이론을 만든, 그 이론을 접하는 사람의 마음, 태도와는 무관하다. 과학 이론의 내용은 주관을 배제한다. 이를 과학의 객관적 타당성이라고 한다. 철학에는 1인칭도 있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그들이다. 헤겔이 진리는 전체라고 주장하였을 때, 진리는 주체인 내가 받아들여야 진리라면서 헤겔을 비판한 사람이 있었다. 키에르케고르이다. 이러한 철학자들이 1인칭적 접근에 해당한다. 객관적 타당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방법에 입각하여 3인칭적 접근을 추구하는 심리철학에 비하면 매우 다른 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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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1주차 -上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4th, 2009

심적인 것은 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슬프다고 하여 가슴을 칼로 그어봐라, 피만 나온다.

내가 희망하는 것, 욕구하는 것 등은 모두 무엇인가를 지향한다. 그런데 감각적인 것, 일테면 내가 아프다는 것은 아무 것도 지향하지 않는다. 즉 심적인 것에는 지향적인 것도 있고 지향적이지 않은 것도 있다. 현대 심리철학은 감각적이거나 질적인 상태와 지향적 상태를 포괄하는 공통 속성을 규명하지 못한다. 독일철학 전통에서는 지향적 태도를 갖는 심적인 것을 ‘정신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독자적인 영역으로 분류한다. 이에 정신의 활동을 다루는 학문을 인문학, 정신과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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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간학] 10주차 -下

Posted in anthropologie by KeeChul Shin on the January 4th, 2009

고통이라는 속성이, 믿음이라는 속성이 아무개의 어떤 시점의 마음의 상태에서 예화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어떤 시점에서 예화된다. 막스 셸러의 ‘정신의 생명화’와 같은 논의가 막연한 데에 비해 예화에 관한 논의는 명확하다. 과학적 탐구의 방법에 가깝다. 이렇게 복합적 속성이 구체화되는 것을 김재권을 예화라고 불렀다. 그때그때 구체화되는 장소, 현장이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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