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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철 ( http://dieBildung.net ) Date : 2008/09/08  Hit : 5691  Recommend : 512   
 [객체화된정신] 1주차
2008.09.05. (금)
강의: 손동현
필사: 신기철

2008-2학기 성균관 대학원 철학과 강좌.

*

지난 학기에 이어 하르트만의 [[Das Problem des geistigen Seins(정신적 존재의 문제)]]를 읽는다. 지난 학기에는 2부 객관적 정신을 다루었고, 이번 학기에는 3부 객체화된 정신을 다룬다. 이 책은 하르트만이 역사철학과 여러 다른 정신과학을 기초하기 위하여 연구한 성과물이다. 하르트만이 다루는 정신학Geisteswissenscahft는 무엇인가?

20세기 전반기, 1950년대 까지 활동한 하르트만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고전적 세계상을 견지하였다. 이 세계가 적어도 4가지 서로 다른 존재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존재영역들로 층 지워져 있다고 보았다. 맨 하위층에 물질존재영역이 있다. 그것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생명이라는 존재 영역이 있고, 그 위에 생명체를 토대로 하고 재료로 하여 심성이라는, 영혼이라고도 부르는 존재영역이 있다. 그리고 지금 현대 첨단 과학에서 탐구해내는 여러 성과들을 신뢰하는 자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층을 견지하거니와, 후기 현대 철학의 과학주의의 영향 아래 부인되는 영역, 즉 정신이라는 존재층이 있다고 보았다. 심성과 정신을 별도의 존재층으로 간주하였다.

심성은 우리의 감정까지 포함하는 존재층이다. 정신이라는 존재층은 상당히 수준이 높은 것이다. 이에 반하여 심성은 사적이다. private, individual하다. 지속성이 없다. 지속성이 있다고 해도 개인에서 끝난다. 그것보다 높다고 상정하는 존재영역에 존립하다고 보는 정신존재는 사적이지 않다. 공유될 수 있는, 시간적으로 더 길게 지속할 수 있는 존재층이다. 독일 말로는 세 번째 존재층을 Seele 영혼이라고 한다. 네 번째 존재층을 Geist정신이라고 부른다.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mind 와 spirit일 것이다. '양자가 별개의 것일까?', '하나의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현대 철학의 주된 믿음이다.

심성과 정신, Seele와 Geist, mind 와 spirit, esprit와 ame, psyche와 nous, 우리말에서는 '마음'과 '얼'로 구별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은 본래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지 않는다. '心'과 '神' 정도가 나온다. '정신'은 서양말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동아시아에서는 '심'과 '신'을 별개로 구분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마음 가운데 '타락한 마음'이 있고 '본래의 모습을 견지하는 마음'이 있다. 전자는 기에 휘둘리고, 후자는 이를 좇는다고들 한다. 심성과 정신을 구분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나. 구분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그렇다면 정신의 영역을 정밀하게 좁힐 필요는 있지만, 그것을 해체시켜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연 위의 인간의 활동으로써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 형성된 문화는 시간 위에서 역사로 성립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인한다면 학교조차 정교하게 다듬어진 자연현상이 된다. 이를테면 카르납처럼 학문 전부를 물리적인, 논리적인 구조로 환원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현대 과학주의가 강하다고 하여도 대개 거기까지 나가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연에는 없었던 문화세계를 하나의 존재영역으로 상정한다면, 문화세계, 나아가 역사세계가 존재론적으로 어떤 기초에 정초 되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화는 인간의 활동의 산물이다. 어떤 활동인가? 신체적 활동? 물론 문화 안에는 인간의 신체적 활동이나 생명적 작용이 깃들어 있다.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 없다. 사적인 신체 작용만의 결과로 볼 수 없다. 정신적 활동의 결과이자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하르트만의 주장이다.

문화를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다. cultural gene문화적 유전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이를 meme이라고 부른다.

정신의 활동이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의 내용을 이루고 또한 역사의 내용을 이루고 그 기초를 이룬다. 이 때 정신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자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규정하기 어려운 정신을 규명하고자 하다보니 자꾸 난관에 부닥친다.

서양인들이 철학적 전통으로 부터 얻은 분석의 틀이 있다. 가장 근원적인 것이 존재론적 분석틀, 존재론적 범주이다. 그 중 요지부동으로 아직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틀이있다; 실체substance - 속성property이다.

하르트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철학적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문화를 규명코자 한다. 단순히 철학적 상상으로써가 아니다. 후설이나 쉘러와 달리 군더더기는 빼고 개념적 탐구에 의존한다. 동시에 과학적 사고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에 하르트만은 과학적 성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에 정신의 활동을 깊이 분석해보니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헤겔의 유산의 리바이벌이지만, 정신에는 각자의 정신도 있지만 공동정신도 있다는 것이다. 이 공동의 정신에게 하르트만은 '객관적 정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다고 개인적 정신에게 '주관적 정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면 자꾸 칸트적 스키마가 떠오르니까.

개인적 정신personaler Geist이 있다. 자명하다. 하르트만은 PG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서 다른 것으로 objektiver Geist객관적 정신을 제시한다. 공동정신, 공공정신이라고 해도 되겠다. 개인의 사적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다. 지난 한 학기동안 그것을 주욱 검토하였다. 처음 수강하는 이들은 우선 '객관적 정신은 공동정신이다'정도만 이해해두기 바란다.

르네상스 정신, 희랍정신, 배달민족의 얼 등을 이야기한다. 누구 거냐? 내 것? 우리 공동의 것이다.

2부 객관적 정신에서 하르트만은 '헤겔 철학에서는 개인적 정신의 총합이 객관적 정신이면 개인 없이도 객관 정신이 있는 것 아니냐?'며 헤겔이 객관적 정신을 실체로, 개인적 정신을 속성으로 간주하였다고 비판한다. 헤겔의 진위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

개인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이 상호 관계할 때 매체mediate가 필요하다. 이것이 이번 학기에 살펴볼 객체화된 정신objektivierter Geist이다. '객체화된 정신'은 하르트만이 만든 말이다. 객체화된 정신이 상호 작용하는 두 정신 사이에 끼어들어 매개해야 개인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은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적 정신과 객체화된 정신이 상호 관계할 때에는 객관적 정신이 양자를 매개한다.

변연경과 손동현이 의사소통을 한다. 서로의 말을 알아 듣는다. 우리가 공동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의미체계를 공유한다. 그런데 말 하는 사람은 개인 정신, 알아듣는 사람도 개인정신이다. 그런데 두 개인정신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공동정신이다. 두 개인 정신은 한국어의 의미체계를 어떻게 습득하였는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니다. 학습을 통해 습득하였다.

습득하려면 매체가 있어야 한다. 그 매체가 무엇이겠나? 국어책은 아니다. 아주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나의 목청의 떨림, 고막의 떨림이 매체일 것이다. 그런데 떨림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객관적 정신은 규모도 크고 생명도 길다. 이것을 담아내는 것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 정신도 포함하여 객관적 정신을 담아내는 틀은 무엇일까? 비석, 책, 제도, 문물 등이다. 이러한 객체화된 정신이 매개가 되어 개인정신과 객관정신이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보면 인쇄 잉크가 발라져 있는 책, 그것이 정신을 매개한다. 그 속에도 정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떻게 생겼나? 자연물로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들었다. 정신적 활동의 산물이다. 이 산물이 다시 정신적 활동을 촉발하고 매개한다. 이 객체화, 개인적 정신(주관이라는 말은 피하자)이 공동정신과 상호작용에 있어 빚어내기도 하고 영향 받기도 한다. 빚어냈을 때 우리는 '객체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을 썼다면 정신적 내용이 밖으로 나간 것이다. 이를 헤겔은 외화Aeusserung라고 하였다. 정신은 밖으로 나가야 힘을 얻는다. 나 혼자 골방에서 생각만 하면 안 된다. 소리라도 질러서 누가 알아듣게 해야 한다. 한 번 밖으로 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소설가가 책을 쓰면 자기 것이 아니다. 공공의 것이 된다. 그러한 점에서 객체화Objektivierung, Objektivation라고 하였다.

헤겔은 외화한 것이 나를 배반할 때 이를 Entaeusserung소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낯선 것이 된다. 여기서 Entfremdung소외가 나왔다. 마르크스는 이를 받아들여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그 산물이 점점 자기를 비인간화한다. 인간은 일을 할 수록 불행해진다'는 노동 소외 논의로 전개하였다.

정신은 밖으로 나가 객관적인 것, 객체화된 것이 되어야 상호교류가 가능해진다. 객체화된 정신이 무엇인가. Kulturgut, 직역하면 '문화재'이다. 모든 문화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 산물이다. 물질적 산물만? 판소리는? 무형문화재라고도 부른다. 이 Kulturgut의 내부, 존재론적 구조를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살펴보고자 하는 이 책의 3부는 '문화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동안 공부한 바로는 이 문화존재론에 대한 논구를 주제적으로 한 철학자가 별로 없다. 영어권에서는 어느 정도 테제를 제시한 사람으로 '마홀리스'라는 미학자가 있다. 사실은 베르그송에게서 문화존재론의 원형을 찾을 수 있고, 칼 포퍼에서 찾을 수 있다. 하르트만에서는 물론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었다. 이를 주체적으로 다룬 대가적인 철학자는 내가보기에 별로 없다. 최근 심리철학 논의 중에 우리가 문화존재론적 관점에서 해석할 만한 테제가 나온다. 다름 아니라 심신관계에 관한 이론들이다. 그들이 문화재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은 없다.

문화재'라고 하여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문화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정신이 밖으로 나와서 실체화된 것 모두를 의미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나의 목소리도 문화재이다. 존재론적 분석한다고 할 때에는 광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도 글 쓸 때 '문화재'라는 표현을 피한다. 일상적 의미가 확고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OG, OtG, 이 세 가지의 정신이 사실은 하나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정신은 하나인데 얼굴이 세 개다'. 어떤 관점에서 보았느냐고 할 때, 세 가지로 구분되어 설명될 수 있을 뿐이지, 존재론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엮여 있다. PG-0G 상호작용할 때 OtG가 매개되듯이, PG-OtG 의 상호작용에는 OG가 매개작용한다. 내가 책 읽을 때, 한국어의 의미체계OG가 매개되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이를테면 나는 스와힐리의 객관적 정신을 공유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스와힐리어로된 책을 읽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OG와 Ogt가 상호작용하려면 PG가 매개해야 한다. '한국예술의 기본 정서는 한이다'라는 말을 한다. 어디서 확인하나? 노래, 책은 객체화된 정신이다. 책은 객체화된 정신의 대표 사례이다. 문자화된 기록. 여기에 한국인의 기본정서 '한'이 녹아들어가 있다. 이를 누가 확인하나? 내가 한다. 이러한 문학작품을 남긴 자가 누구인가? 이러한 가곡을 쓴 자가 누구인가? 개인이다. 저 책을 집필한 자는 어느 개인이다. PG의 개입 없이는 OG와 OtG의 상호작용도 성립할 수 없다.

정신은 세 가지 Aspekte양태, 혹은 존립방식을 갖는다. 그런데 두 정신이 상호작용할 때 나머지 하나가 매개작용을 한다. 하르트만이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으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구성하고 있다.

*

객체화된 정신을 문제삼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들이 전면에 떠오르는지 간략히 이야기하겠다.

객체화된 정신은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조각작품. 그것은 예술작품이요 객체화된 정신이다. 조각작품은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나에게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전면이 있다. '돌, 청동, 굴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지면 차갑다', '부드럽다' 등. 그런데 그것이 조각작품이 되려면 겉으로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 만으로는 안 된다. 형상이 있다. 그 형상을 부여한 조각가의 정신이 그 작품 안에 들어가 있다. 책의 경우 더 명확하다. 오히려 책에서는 정신 만을 본다. 그런데 종이에 활자가 찍혀있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객체화된 정신은 이처럼 존재론적으로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이것을 해명해야 한다.

객체화된 정신, 광범한 의미의 문화재의 장르가 많다. 이를 유형별로 구분해서 거기서 존재론적 이중구조가 어떻게 전개되고있는지, 분석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 하나.

우선처음에 논의할 것은 객체화 작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신이 밖으로 즉 외부세계로 자기 자신을 외화시키지 않으면 정신은 자기 활동을 할 수 없으니까. 존재론적 성층이론에 비추어 어느정도 설명해야 한다.  그 다음에 존재론적 이중구조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다음에는 이중구조가 장르, 영역에 따라, 이르테면 음악, 회화, 그 중에서도 조각, 디자인, 건축 등에서는 어떻게 되는지 주요영역을 나누어 분석할 것이다ㅣ.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역사성의 성립과 그 구조이다. 책의 부제가 '역사학Geschichtswissenschaft 및 다른 정신과학들의 정초를 위하여'이듯. 역사학은 인문학의 커다란 기둥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형이상학이 있다. 그에 앞서 역사존재론을 물어야 한다. 역사가 존재론적으로 어떻게 성립하냐는 것이다. 그 물음에서 중심적인 것이 객체화된 정신 논의이다.

기본발상은 다음과 같다. 역사는 과거,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그것은 지금 없어서 역사를 성립시키지 못한다. 역사가 성립하려면 과거가 현재 남아 있어야 하고, 미래가 미리 여기 와 있어야 한다. 과거가 현재 남아있는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이 객체화된 정신이다. 정신이 밖으로 나가서, 외화해서 정착 해야 그것이 시간적 흐름을 타고 살아 남는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활동은 다 흘러가버린다. 우리의 개인적 정신은 기억으로써 내장한다. 우리 기억 속에 과거는 살아 있어서 우리의 현재를 구속한다. 객관적 정신의 영역에서는? 객관적 정신이라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정신의 과거 보존은 기억에서 일어나지만, 객관적 정신의 과거 보존은 객체화된 정신에서 일어난다.

광개토대왕비는 당시 객관적 정신이 그 안에 들어간 객체화된 정신이다. 천 년이 지나도 돌멩이가 지속됨에 따라 우리는 대왕과 그 일당의 정신을 알 수 있다. 객체화된 정신이 역사를 구성하는데에 어떤 역할하고 한계를 갖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을 말하겠다.

객체화된 정신이 역사를 성립시키는 존재론적 기초라고 하였다. 모든 우리의 삶을 안정시키는 토대는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장애물이다. 우리는 집때문에 안정적으로 살지만, 집때문에 안정적으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안정은 구속이다. 성균관 대학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하나, 그 대신 새로은 것을 빚어내기 어렵다. 객체화된 정신의 중량이 너무 무거워 지금 살아있는 정신이 이를 지고 가기 어렵다. 깔려서 과거에 묻히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문화적 유산을 감당하지 못하면 역사가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산이 없으면 성장을 못한다.

객체화된 정신이 어느정도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살아있는 정신을 제약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니 유구한 전통을 자랑할 일 만은 아니다.

객체화된 정신이 PG, OG상호작용 매개한다고 하여 OtG가 단순 수단은 아니다. OtG는 오히려 상호작용을 규정한다. 매체를 하나만 갖고 있으면 활동은 단조롭다. 매체가 많으면 상호작용도 다양하다. 여러 언어를 알고 있으면 다양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활동은 매체에 국한된다.

역사의 지지와 역사의 부담, 나아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도 다루게 될 것이다. 얼마만큼 역사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 필요할까. '역사의 질곡과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말도 한다. 역사철학적인 문제인데,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해보자.

이렇게 네 가지 주요한 문제를 이야기하였다.

*

시인 이상, 랭보 등 시대를 앞서간 이들이 있다. 시대는 그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시는 객관적 정신을 살찌웠다. 공동정신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면 과연 이상이 당대의 공동정신과 아무 상관없이 그러한 시를 썼을까? 그렇지 않다. 당대의 공동정신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는데, 머리 나쁜 이들은 캐치하지 못 한 것이요, 머리 좋은 이상이 먼저 캐치하여 발표한 것이다. 이상 역시 그 문화 환경 속에서 그 영양분을 먹고 자랐다고 보아야 한다. 같은 공동정신을 먹고 살면서 새로운 정신을 낳는 개인정신도 있고, 평년작하는 놈도 있고 흉년하는 놈도 있다.

하이데거는 상식을 집어치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르트만 상식위에 과학, 과학 위에 철학을 놓으려 하였다. 상식을 중요시 하였다.

누스-프쉬케-비오스-휠레 / Geist - Seele - Leben - Materie. 하르트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전 철학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 철학으로의 연결을 고민하였다. 고전적 사상을 버리지 않고 잘 정리하였다.

한 시대가 다음 시대에 의해 극복되었다고 할 때 그 전 시대는 의미 있는가. 헤겔은 역사의 성숙을 위해 모든 시대는 기여한 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공동정신의 성쇠에 관한 의미부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론적 기초논의를 해야 한다.
변화와 존재, 양자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설명할 것이냐'는 서양철학 초기서부터의 aporia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dynamis - energeia.로 설명. 잠재적으로 있는 것이 점점 실현된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형상이 있고, 변화하는 질료가 있다. 헤겔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객관정신의 문제로 오면 존재론적으로 더 모호해진다. 객관정신을 '있음', '임'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 계속 변하는데. 그래서 한계는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객관적 정신을 존재로 보지 않으면, 철학적으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하르트만 자신은 우선 현상기술만 하겠다고 말 한다 - Phaenomenologie.
그 다음에 문제를 찾아내 보겠다 - Aporetik.
그 다음에 가능하다면 이론을 만들어 보겠다 - Theorie.

하르트만은 객관적 정신만이 아니라 개인적 정신도 존재론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주장한다. 정신이라는 존재 층이 sekundaer함을 인정한다. 그래도 역시 존재론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데 까지는 탐구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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