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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철 ( http://dieBildung.net ) Date : 2009/01/05  Hit : 7543  Recommend : 789   
 [철학적인간학] 15주차 -下
2008.12.10. 수.

강의: 손동현
발표: 김선진, 박보경, 이지영
필사: 신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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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동물 이상의 존재이다. 동물 이상의 존재이게끔 해주는 어떤 요인을 사람들은 정신이라고 부르는데 이 정신이 인간의 생물학적 여건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사회 생물학의 테제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바로 이 점이다.

지난 시간에는 사회생물학을 발생 배경에서 살펴보았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동물학적 관점에서 이해하자. 그러면 오히려 이해가 더 잘 되는 부분이 있더라. 그 기본 입장에서 출발하면 인간의 동물성과 정신성을 이원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 선상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

사회생물학 - 김선진 발표

사회생물학에서 도덕, 윤리를 어떻게 보는지를 중심으로 발표하겠다. 그러면 사회생물학의 인간관을 더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동물에게서 도덕적 행동이 보인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도 있다.
사회 생물학이 도덕을 탐구하는 이유, 왜 규범은 생성되었는가
사실 사회생물학은 도덕을 탐구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자연주의적 오류(George Moore), 즉 존재로부터 당위가 억지로 추론될 수 없고 사물의 기원과 속성들로부터 가치가 도출될 수 없다는 원칙을 어길때 생기는 오류이다. 자연이 이러니까 인간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오류이다.

흄이 자연주의적 오류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회 생물학 역시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 받는다. 도덕이 어떻게 진화해왔는가가 우리의 행동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윤리학은 필요하다. 인간도 생물인 이상 생물학적 가능성과 한계를 참작하여 윤리를 탐구해야 한다. 일종의 현실주의적 윤리학이다.

흄은 좋음good을 '우리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규정한다. moral sense도덕 감정의 기본에 대해서는 좋아함like과 싫어함dislike로 규정한다. 호오가 기본이 되어 형성되는 종합적 감정이 도덕 감정이다. 그 감정에 잘 맞는 것은 도덕적으로 선한morally good 것이다. 이는 곧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이다.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별도로 도덕적 선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 Moore의 흄 비판이다. 무어는 흄이 존재로부터 당위를, 사실로부터 가치를 도출하는 오류를 범하였다고 지적한다.

Hume - 'What is desirable?'
'What is visible' - What we can see is visible.
'What is portable' - What we can transport.
then, 'What is desirable?' - What we can desire.

see, hear과 desire가 같은가? 흄은 우리가 다 바라니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무어는 그게 원래 바람직하니까 우리가 바란다고 지적한다. 그것이 원래 가치가 있으니까 우리가 원한다는 것이다. 흄처럼 우리가 원하면 가치있다고 하는게 편하다. 그러나 그러면 도덕의 보편성이 문제시 된다.

어떤 사실로부터 정당한 근거가 도출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철학적 전통이다. 경험주의자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경험주의자의 입장으로부터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왔다. 일테면 공리주의Utilitarianism, 실용주의 등이 모두 이로부터 나왔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자연적 사실로부터 옳고 그름, 선하고 악함, 당위, 가치가 도출되어 나온다고 보는 자들이 경험주의자들, 자연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잘못됐다고 무어가 지적한 것이다.


왜 규범은 생성되었는가 - 사회생물학자들은 유전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그 예로 1) 친족 선택, 2) 호혜적 이타주의, 3) 일방적 이타주의를 제시한다.

1) 친족 선택
- 자신과 유전적 형질이 닮은 사람에게 이타적 .

2) 호혜적 이타주의
- 받은 만큼 돌려준다. 친족이 아닌 개체들에 대한 이타주의를 설명해준다.

3) 일방적 이타주의
- 대단한 사회적 존경을 받아 간접적 이득을 얻음으로써 유전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 준다.

왜 특정 규범이 선택, 준수, 파기되는가? 유전자의 보존에 도움이 되는 규범이 선택되고, 도움이 되지 않는 규범은 파기된다. 일테면 살인, 도둑질을 금지하는 십계명이 대표적 사례이다. 생물학적 가능성을 뛰어넘는 규범은 선택될 수 없다. 일테면 라마단. 금식 등 혹독해보이지만 이 한 달의 기간 동안 해가 지고 나면 밥을 먹어도 된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규범이 선택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생물학적 가능성을 넘어서는 규범은 문화적으로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지만 파기되고 수정되기 마련이다.

정리하자면,
1 사회 생물학은 윤리의 근거가 될 수는 없지만 윤리학의 연구에는 도움된다.
2 규범의 많은 부분은 유전자의 보전이라는 사회 생물학적 논리로 설명한다.
3 규범을 설정할 때에는 최소한 생물학적 가능성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

과제 - 새로운 규범의 타당한 근거를 밝히고자 할 때, 자연주의적 오류를 과감하게 범할 것인가, 범하지 말 것인가가 우리의 문제이다. 반 만 범할까? 그것도 한 방법이다. 어짜피 완벽한 근거 제시는 어렵다고 치면, 사실들 몇몇을 모아 이것이 근거라고 치자. 시나이산 올라가서 계명 타올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흄에 대한 무어의 반박을 다시 반박하는 사상가도 있다. 자연적 사실 외에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는 것이다. 다만 자연적 사실을 가능한 한 많이 모으자. 그러면 그 오류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 아니냐. all or nothing으로 가지 말고, 가능한 한 '더 가까이'.


칸트 - 이웃을 왜 도와? 동정심 때문에? 아니야. 내 감정을 배제하고 순수한 실천 이성에 입각하여 도와주어야 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도킨스 - 이웃을 왜 도와? '나'라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유전자가 자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돕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나와 유전자 공동치가 가장 많은 개체인 자식을 보호한다. 8촌 보다는 6촌을, 6촌 보다는 4촌을 더 배려한다. 혈족 아닌 경우도 있다. 결국 다 자기 유전자 보존 위한 것이다. 도와야 사회 전체도 보존되고 자기도 살아 남을 수 있으니까.

유전인자가 인간의 도덕성을 담보한다? 성균관 유생 여러분 입장에서 도킨스는 싸가지가 바가지인 놈이다.

40일간 금식하라 - 며칠 못 간다. 현실 속에서 수용 가능해야 한다. 이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요인이다.


1+1=2, 학습을 통해 배운다. 그렇다고 학습 과정때문에 9+3=12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타당 근거는 나의 경험적 학습 과정에 있지 않다. 수적 질서 자체에 있다. 이를 도덕적 규범의 타당 근거에 적용하자. 우리가 남을 도와야 한다는 규범을 어떻게 배웠나? 남을 도와야 나도 산다는 생물학적 조건때문이라고 치자. 남을 도와야 하는 이유가 생물학적 이유때문 만인가? 어쩐지 아쉬운 것이 있다. 규범의 타당 근거와 그 규범이 발생하게된 생물학적 사회적 배경이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자연적, 생물학적 삶의 조건, 여건, 삶의 요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문제를 가지고 중요한 시사점을 논의하였다. 인간의 정신적 활동은 인간의 생물학적조건의 결과 빚어진 것이고 그 범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칸트나 막스 셸러와는 영 다른 입장이다.

*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이러한 문제의 골격을 잘 보여준다. 해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잘 정형화하고 이후 연구를 위하여 방향을 제시하였다. 내가 보기에 하르트만의 방향 제시 위에 사회 생물학도 서 있다. 하르트만의 설명에 따르면 칸트도 이해가 가고, 사회생물학자의 이론도 이해가 된다.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는 큰 틀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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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만의 인간관 - 박보경 발표

4개의 존재층 - 정신적 존재 / 의식적 존재 / 유기적 존재 / 무기적 존재
세계는 하나이면서 4개의 존재층으로 구분된다. - 실은 Aristoteles가 제시하였다; 누스, 푸시케, 디오스, 휠레.

인간은 이 모든 층들의 총체이다. 몸과 마음의 관계는 이들 층들 간의 관계 중 하나이다.

물질이라는 존재 층이 있고 그 위에 생명이라는 존재 층이 얹혀져 있다. 중첩되어 있다. 인간은 4층 건물, 동물은 3층 건물인 셈이다. 각 존재층은 특유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물질이 존재하는 방식이 있고,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존재 방식을 일컬어 존재 범주라고 한다. 존재의 원리이다. 각각의 층에는 각각의 층을 지배하는 원리, 즉 그 층이 존재하는 방식이 있다. 서로 다르다. 그런데 서로 붙어 있다. 그래서 구분 되면서도 서로 유리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각각의 존재층을 지배하는 원리를 보자는 것이다.


네 개의 존재층은 어떻게 해서 층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실재 세계 성증 법칙에는 5가지가 있다.

1. 범주의 재현 및 중단 - 낮은 층의 원리가 위층에서 다시 나타난다. 그렇다고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는다. 가장 아래 층이 가장 세다. 그래서 물리학이 세상을 관장하는 힘이 가장 센 학문이다. 가장 낮은 층인 물질적 세계를 관장하는 원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철학이 가장 약한 학문이다.

2. 상향 형성 관계 - 밑의 원리가 위층에 올라갈 때, 어떤 것을 올라오고 어떤 것은 탈락한다. 올라오면서 작용하는 방식도 다르다.

3. 변함없이 관통하는 것도 있다. 각각의 층을 철근이 관통하면서 그 건물을 지탱해주듯이. 이들을 범주적 근본계기라고 한다.

4. 새로운 것의 법칙 - 하위범주들의 재현은 결코 높은 층의 고유성을 구성하지 않는다.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생명적 세계도 지배한다. 그렇다고 생명의 고유한 생명다움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생명의 세계에 오면 변양한다. 생명 세계를 생명세계이게 해주는 생명다움 때문에 변양한다.

5. 상승적 계열을 이루는 이 존재 형식들은 결코 연속체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 연쇄의 일정한 단계에 범주적으로 새로운 것이 많은 범주들에서 동시에 등장하므로, 존재층들은 명백하게 서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층들의 계열에 있어 층간 간격이 보여주는 특징적인 현상이다.


상위층과 하위층 간에는 아래의 법칙들이 작용한다.

1. 의존법칙- 상위층은 하위층에 의존한다. 당연한 얘기다. 2층이 1층에 얹혀 있지, 1층이 2층에 얹혀 있는게 아니다.

2. 무관성의 법칙 - 하위층은 상위층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1층은 1층대로 있다. 2층에서 당구를 치든 떡볶이를 먹든.

3. 재료의 법칙 - 생명체는 물리적 물질을 필요로 한다. 물질에 얹혀 있다. 의존해 있다. 그러나 물질을 재료로 활용한다. 그래야 생명체가 성립한다. 이처럼 상위층은 하위층을 재료로 쓴다.

4. 자유의 법칙, 의존성 속의 자유 - 2층에서 떡볶이를 먹든, 게임방을 하든 1층 주인은 뭐라고 간섭할 수 없다. 생명성이 물질적 세계를 재료로 하여 생명체를 구성할때, 어떤 재료를 선택할지 물질 세계가 명령하지 않는다.


상위층은 하위층을 재료로 쓴다. 그러면서 의존도 한다. 하위층이 없으면 존립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하위층에게 의존되어 있다. 의존되어 있다고 하여 상위층이 하위층으로 완전히 환원되고 남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생명체는 물질적 세계를 재료로 쓴다. 물질에 의존되어 있다. 그렇다고 물리학적 환원주의처럼 생명체가 물질로 다 분석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 층은 나름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정신적 활동은 내 몸에 의존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여 내 정신적 활동이 나의 신체적 작용으로 전부 해소되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활동은 나름의 고유 영역을 가지고 있다. 나름의 고유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일컬어 자유라고 한다. 하위 존재층에 의존되어 있을망정 자기가 어떻게 할 것인지는 스스로가 결정하며,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얼만큼 자유롭냐고 물을 수 있다. 정신활동의 자유로움은 신체에 의존하는 만큼 자유롭다. 신체에 의존해야 정신은 자기 활동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정신은 자유로와. 신체, 너 가!' 그러면 정신도 간다. 정신이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영역은 신체에 의존하는 영역과 똑같다. 심지어 '의존하는 만큼만 자유롭다'고 까지 이야기한다.

나에게 활동공간 10이 있는데 5는 자유, 5는 의존이 아니다. 10 전체가 의존이고 10 전체가 자유롭다. 의존하는 만큼 자유로운 것이다. 내 정신이 자유로우려면 내 신체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내 정신은 내 신체의 조건을 활용하여 활동할 수밖에 없다.

하르트만의 '의존 속의 자유'를 비행기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비행기는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여야 빨리 날 수 있다. 이를 위한 온갖 궁리를 한다. 그렇다고 공기저항을 없애고자 공기를 없애면 비행기는 뜨지 못한다. 비행기는 날개 위 아래의 공기 압력 차이에 의해 위로 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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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 속의 자유 - 이지영 발표

마음은 몸에 의존하며 자유를 누린다

하르트만은 존재층을 네 개로 보았지만, 단순화시켜 신체와 정신으로 보자. 신체에 정신이 얹혀 있다. 그런데 칸트가 두 세계를 갈라 놓았다. 신체는 자연 법칙에 지배되고, 정신은 도덕 법칙을 따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도덕 법칙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검증할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두 세계를 나누어 놓고 양심을 논한다. 예지적 직관주의에 의존한다. 하르트만은 이에 Independenz in der Dependenz의존 속의 비의존을 제시한다. 의존 속에서만 자율적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 영역, 신체가 속한 물리적 세계는 자연법칙이 지배한다. 그 모든 것은 인과의 원리에 입각한다. 같은 원인으로부터 같은 결과가 나온다. 원인은 시간적으로 앞서 있고 결과는 원인 뒤에 온다. 이러한 세계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정신이다. 이 인과 결정 구조 없이는 정신은 활동할 수 없다. 정신의 활동 영역은 causality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 고유한 독자성을 갖는다. 목적적 결정 구조. 내가 목적을 설정하고 이 목적을 실현하고자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를 정신의 기본 구조라고 보았다. 목적을 실현코자 우리는 그 수단을 고민한다. 이때 하위의 인과결정구조를 참조하게 된다. 인과결정구조를 참조하여 목적 결정 구조를 형성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고민하는 것이다.


*

인간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신체를 무시할 수 없다. 신체를 활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신을 무시할 수 없다. 정신은 신체에 의존하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정신의 독자성도, 신체에의 의존성도 인정해야 한다. 학기 처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같은 이야기에 도달하였지만 우리는 먼 길을 돌아 보았다. 앞으로는 단순히 칸트가 옳으니 그르니 이야기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범주 착오의 오류이다.


월요일에는 질문 있는 사람들 오기 바란다. 마지막 토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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