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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철 ( http://dieBildung.net ) Date : 2009/01/05  Hit : 7888  Recommend : 755   
 [철학적인간학] 마지막
2008.12.15. 월.

강의: 손동현
필사: 신기철

*

종합토의 집중 과외시간이다.

철학적 인간학에 관한 내 생각을 밝히겠다. 로렌츠로부터 힌트 받았다.

'2+7=9'를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알긴 하지만 '2+7=9'의 근거가 경험에 있지는 않다. 칸트는 선천적인 순수한 이성이 스스로 형식을 부여하고 스스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경험과 상관 없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경험과 관계 없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로렌츠(생물학자, 동물 행태학자)는 칸트에 관하여 긴 글을 쓴 바 있다. 칸트의 테제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선천적인 순수한 이성이 어디로부터왔는지를 문제 삼는다. 칸트는 발생론적 고찰을 하지 않으며 그저 '경험과 무관하다'고만 주장한다. 로렌츠는 그렇다면 경험 말고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묻는다. 로렌츠는 생물학, 동물 행태학을 공부한 학자 답게 인간 경험을 생물학적 경험으로까지 확장 시킬 것을 제안한다. 적어도 생명체가 진화해왔다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진화의 전 과정이 곧 생물학적 경험 영역이 된다. 영국 경험주의자들이 말하는 심성적, 감정적 경험 외에도 생리적 경험으로까지도 확장하여 포함시켜보자. 그러면 이 수백만년의 진화의 역사가 모두 경험에 포함된다. 그 결과 우리가 이러한 순수한 이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게 내 생각이다.

인간의 정신적 활동은 물질과 맞닿는 신체적 작용과는 다른 독자적 영역을 갖는다고 인정하자. 그러면 환원주의는 일단 배격하게 된다.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은 뇌수에서 나온 것이므로 물리화학적 작용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배격할 수 있다. 인정해야 할 것 같다. physicalist들도 인정안하려고 하지만 최후에 가서 설명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신체적 작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정신적 활동의 고유성이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원리적으로만이 아니라 발생론적으로 고찰하자. 그러면 신체적 활동으로부터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원리가 신체적 작용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이론적 이성은 있다. 어떻케 생겨? 장구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생긴 것이다. 진화의 여정을 어떻게 판명하나? 아직 해명 못한다. 해명 못한다고 하여 환원시켜버리거나 그 연원 조차 별개의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지적 치열함이 덜하다는 뜻일 뿐이다. 내 입장은 말하자면 창발론emergentism이다. 어떻게 emergent했느냐, 아직 완전히 해명 못했을 뿐이다.

심리철학에서 끝까지 해명 안 되는 것이 있다, qualia. 내가 직접 체험하는 빨강redness과 특정 파장이 같은 것인가.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면 빨강은 어디서 나왔나. emerge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온갖 것에 대해 emerge했다고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온갖 과학적 지식으로써 해명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환원적 설명을 포기하면 학문적 탐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서 모르는 것을 해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환원해야 한다. 단 환원 되지 않는 것을 어거지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 심리철학의 존재론에 따르면 존재함이란 causal power를 가짐이다. cause and effect의 chain 속으로 들어가느냐이다. cause and effect가 세계를 설명하는 전부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물질주의적, 기계주의적 세계상의 전제이다. 같은 원인에서는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인과적 연쇄로 이루어진 것이 세계 전체다. 그런데 emerge했다? 어디서 푹 나왔다고 하려면 그것도 인과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 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그런데 이렇게 푹 나온 것이 인과적으로 행사한다. 우리 정신이 몸에서 나왓다.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은 안되는데, 암튼 정신이 신체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인과의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마음-정신 : 나중 것이 먼저 것을 결정한다. 목적 - 수단의 관계.(미래의 목적을 위해 과거 및 현재는 수단이다)
신체-물질 : 먼저 것이 나중 것을 결정한다. 원인 - 결과의 관계.

원리적으로 보면 supervenience theory나 emergentism이나 같다.

아무리 마음, 정신이 emergent했다고 해도 신체-물질 세계에 인과관계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그러면 신체, 물질계로부터 마음, 정신이 emerge했다는 전제가 잘못된 것 아닌가? 인과관계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바꾸면서영향을 주는가? 천만에. 정신은 독자적 자유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물질계를 무시할 수 없다. 무시하면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진다.

그렇다고 하여 정신이 무엇을 할 지, 그 목적 조차 인과적으로 결정될 것인가? 결정될 확증이 있다면 이 구도는 바뀐다. 목적도 인과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정신은 물질계에 의존하면서도(Dependenz), 스스로가 스스로의 방향을 잡는다(Independenz). 의존하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우리 삶을 정합적으로 볼 수 있다.

과학은 세계를 보는 여러 안목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삶을 기획할 때 고려하는 여러 안목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 삶을 과학적 설명으로 모두 해명하려고 한다. 범주적 착오이다.


하르트만에 따르면,
목적적 설명interpretation - 목적 수단 관계 밝혀 설명한다.
ex) 학교 왜 왔어? 공부하러요(시간적으로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지금 것이 진행되게끔 하는 것. 우리의 소망, 미래가 담긴다.)
과학적 설명explanation - 인과관계 밝혀 설명한다.
ex) 학교 어떻게 왔어? 버스 타고요.(미래, 희망, 소망이 담기지 않는다. 과거 사실만 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꿈꾸는 존재이다. 꿈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꿈에는 가치가 들어간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을 결정한다. 과학적 설명에서는 있느 것이 있는 것을 결정한다.


숫자와 같은 논리법칙도 인간으로부터 창발된 것인가?
칸트 - 순수이성.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 생명이 자기 보존하려면 물리적 세계를 재료로 활용해야 한다. 물리적 세계는 배타적이다. 동시에 두 자리를 차지하거나, 두 존재가 동시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그래서 연장extension이라고 한다. 물리적 세계에 생명이 얹혀서 살려면 1) 물리적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 물리적 세계를 기획하려면 2) 물리적 세계를 알아야 한다. 이에 지성의 방향으로 진화한 계통이 있고, 몸에 장착한 계통이 있다. 동물들은 본능으로서 몸에 장착하였다. 인간은 학습하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논리적 사유이다. 동일률, 모순률, 배중률. 동시에 A이면서 -A일 수 없다. 물리적 세계 공간 배타성을 반영한 사유이다. 물리적 세계의 배타성과 같지 않은가.


목표를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문화권의 향방이 바뀐다. 목표가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목적이 없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이 있음을 부정하는 정신적 사유는 있을 수 없다.

여러 학자들을 살펴보았다. 다 불완전하다. 다 편파적이다. 이런 입장들을 보며 정답 없는 문제지만 고민해보자는 것이 이 강좌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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